2010년 12월 4일 심야, 5일로 날짜가 바뀐 후에도 교토의 음식점들은 자포자기한 도쿄 팬·서포터들로 넘쳐났고,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기면 잔류가 확정되는 J1리그 최종 제34라운드 교토 산가 FC전에서 패해 비셀 고베와 순위가 뒤바뀌며 16위로 떨어졌다. 마지막에는 경기를 조율해야 할 카지야마 요헤이가 수비 라인에서 긴 볼을 찼지만 마무리로 연결되지 못했고, 초조함과 혼돈이 지배하는 처참한 내용으로 J2리그 강등이 결정되었다.
강등의 원인은 방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10경기는 4승 3무 3패로 성적이 특별히 나쁜 편은 아니었고, 제33라운드의 몬테디오 야마가타전이 무승부로 끝난 시점에서는 잔류권 내인 15위였다. 최종 라운드에서 무승부는 안 되지만, 이기면 무조건 J1리그에 잔류할 수 있었기에 위기감은 적었다. 그러나 막상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최종 라운드에 임하자 그 긴장감은 예상 이상이었고, 평상시의 퍼포먼스를 발휘하지 못한 채 끝났다.

1년 만에 J1리그 복귀를 목표로 한 2011 시즌이었지만, 새로 영입한 브라질 국적 선수 3명의 퍼포먼스가 올라오지 않았다. 게다가 타겟맨인 히라야마 소타와 타카마쓰 다이키의 부상 이탈로 인해 공중전을 중심으로 한 팀 구성도 무너졌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중단 후 5경기에서는 카탈레 도야마를 상대로 한 승리가 유일한 1승 2무 2패라는 부진에 빠졌다. 위기감이 높아지자 하뉴 나오타케 등이 볼 소유를 중심으로 한 지상전 스타일로의 전환을 당시 오쿠마 키요시 감독(2010 시즌 중반부터 두 번째 취임)에게 건의했다. 시즌 중에 전술을 변경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만, 이것이 적중했다. 리그 경기에서는 점차 안정된 강함을 발휘하며, 최종전을 기다리지 않고 도토리에서 J1 승격을 결정했고, 더 나아가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J2 우승을 달성한 후, 그 기세를 이어 천황배에서 다시 팀을 숙성시켜 나갔다. 12월 24일 준준결승에서 우라와 레즈를 꺾은 경기 후, 곤다 슈이치가 프레스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팀의 충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세를 타고 2012년 1월 1일에 맞이한 천황배 결승은 강등 당시 상대였던 인연의 교토와의 대결이었다. 지휘관은 아키타 유타카 감독에서 오키 타케시 감독으로 바뀌어 어려운 상대였지만, 도쿄는 완성도와 선수들의 질에서 앞서며 선제골을 허용했음에도 4-2로 승리를 거두었다. "아시아에 데려가고 싶었다"고 말한 오쿠마 감독의 대망 성취. 첫 우승을 이루어내며 교토에서의 악몽을 1년 동안 떨쳐내고 클럽으로서는 처음으로 AFC 챔피언스리그(ACL) 출전을 결정했다.


1998년 10월 1일은 구 JFL에서 J2리그로 이행하며 J1리그라는 정상의 모습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된 날이었다. 그러나 2010-2011년 J2리그 강등과 우승을 거치면서, 승점과 스타일 구축에 대한 의식을 높게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도쿄의 시각은 J1리그 정착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타이틀을 목표로 하는 단계로 한층 격상되었다. 2023년 10월 1일에 창립 25주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클럽으로서도 팬·서포터로서도 목표는 항상 ACL 출전권 또는 타이틀 획득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엄격한 것이 되었다.
J2리그 강등이라는 아픔은 헛되지 않았다. 교토의 쓰라린 밤을 계기로 도쿄의 역사는 더 강한 자의 지위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Text by 고토 마사루(프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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